2012년 2월 11일 토요일

붉은 달 2003 - 토키와 타카코, 이세야 유스케


게시자 hakobu17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



영화 '아카이 츠키'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만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나오키 상 수상작가('게이샤의 노래') 나카니시 레이(なかにし)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의 어머니의 삶을 다룬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전쟁드라마입니다.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2시간 여의 필름 속에 압축해서 담아내었죠.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호타루(ホタル: The Firefly, 2001), 철도원(Poppoya, 鉄道員: ぽっぽや, 1999)등을 연출한 일본감독이고,

토키와 타카코는 홍콩영화 '성월동화((星月童話: Moonlight Express, 1999)'에서 장국영과 함께 출연하여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 여배우죠.

이 영화 또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전작들처럼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는 사랑을 주제로 마음을 밝혀주는 작은 빛에 대한 고찰인 듯 합니다.

'스티븐의 전쟁영화보고', http://www.stevenh.co.kr/entry/붉은---2003-일본 에서 배경지식을 참조했습니다.

영화는 1935, 새출발을 하기 위해 중국 헤이룽장 성(龙江) 무단장 시 (牡丹江市, 모란강) 로 이주하게된 모리타 유타로와 나미코 부부로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줄거리는 영화나 위의 '스티븐의 전쟁영화보고'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결말까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으니 영화를 보신 뒤 방문하시면 좋을 듯싶네요.



개인적으로 일본인의 '삶의 방식'이 여러 갈래로 드러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명분을 앞세워 전선에서의 죽음을 택한
(사실상 자결)을 택한, 나미코의 첫사랑이기도 했던 오오스기 관동군 중좌(호테이 토모야스 분).

 

"죽을 장소를 잃은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지." "그것이 군인이라면 더더욱!"

(사령부로 돌아가라는 부하들의 말에) "최후의 공격이다. 조국에 대한 애국이란 말이 맞을지도!"


모리타의 운전기사 무라나카도 비슷한 말을 했죠. 자신도 일본남자라고, 불편한 다리 때문에 징집도 면했는데 목숨 연명하려고 도망 다닌다면 자손 대대로 수치가 될거라고

국가가 저지른 잘못과 그로 인해 국가가 져야할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다며 반성하는, 또 그게 애국이라 믿는 모리타 유타로(카가와 테루유키 분).

 

(자신이 46세임에도 불구하고, 45세 이하의 젊은 층에 대한 강제노역에 자원하는 이유는)만주에서 술을 만들어 크게 이름을 날린 건 혼자 잘먹고 잘 살자고 그런게 아니라 조국의 번영을 위해 열심히 일한 거라고 주장하는, 그래서 동포들과 행동을 같이 하려고 한다고 말하죠. 아주 눈물이 앞을 가리는 '愛國'이군요…… .

조국을 위해 죽는게 그렇게 훌륭한 일인지, 개인이 죽으면 국가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결국 살아남는게 중요하다며 이에 반발하는 나미코.


 

"아들을 전장에 보내면서 만세를 부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살기를 바라는 게 이기주의인가요?"  "난 살고 싶어요. 살아서 아이들도 살리고 싶어요."

"어째서 그렇게들 악착같지 못해요? 왜 다들 빨리 죽고 싶어 안달이에요? 끝까지 살아야 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해요. 안 그러면 지금까지 버텨온 보람이 없잖아요!"

(딸 미사키가 자기만 살려고 하는 건 비겁하다. 살아남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삶이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는 거라고 하자) "잘 들어! 아름다움도 추함도 살아남은 다음 얘기야!" "가장 비겁한 짓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거야!"





그리고 아주 일부이긴 했지만 여러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과 스스로의 삶에 대한 증오감으로 자학, 반성을 하는 전 보안국 요원 히무로 소위(이세와 유스케 분).

 



히무로의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일본은 많은 중국인들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고갔소. 일본이 이 나라에 지은 죄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요. 그리고 나의 역사도난 내 목숨을 걸고 이 나라와 이 나라 국민에게 속죄하지 않으면 안돼오.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오! 만약 다시 살아남는다면 새롭게 살기 위한 일보라고 생각하오."

 

이 영화는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초한 비극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제국의 식민주의정책의 책임은 누구한테 물어야 하죠?

그리고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하여 살아온 일본인들은 단지 그들의 정부가 추진한 이민정책의 피해자 일뿐일까요? (영화 속에선 강변합니다만…)

 

(만주 동북부에 소련군이 진입을 하면서 후퇴하던 관동군은 이들 개척민들에 대한 보호는 엄두도 못내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그대로 버려집니다. 실제로 일본은 송환선을 보내 1946 4월부터 이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더군요.)

 

식민제국의 비호 속에 타민족, 타국가의 불행을 발판삼아 향락을 누리던 그들에게 면죄부까지 주어질 순 없죠.

만주대륙을 '노스탤지어'로 결론내리는 나미코에게 일본의 침략으로 신음중이던 식민지인들의 처참한 현실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이전 영화에서 비쳐진 일본인들의 전쟁관(과거의 榮華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던)에 비해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한가지 재밌는 점은 그동안 일본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영화 속 타이틀, '태양'''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그들로 인해 진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그 영향으로 역사마저 왜곡되었던 주변국가와 그 국민들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히무로 소위의 자학과 반성의 말 속에 간간히 흘러나오지만 아직 미흡합니다.

 

이젠 그러한 논란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기위안' 또는 '변명'으로 치부될 수도 있죠.

 

주변국을 침략한 건 사실이지만 일본은 살아남기 위해서 전쟁을 했고, 또 살아남기 위해 희생을 치뤘다는 주장.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였으며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주장.

 

일본은 삶에 대한 강한 집착과 애착을 가진 여주인공 나미코의 의지처럼 패전 뒤에도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나 봅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들의 철학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그리고 부여하는 의미가 달라지는 듯 하네요.

 

음악과 분위기 때문인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글루미 선데이"가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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