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난징! (南京!南京!: City Of Life And Death, 2009) - 유엽, 고원원, 나카이즈미 히데오, 범위 루추안 감독의 회심의 역작. 영화는 중국 국민당의 수도를 혼돈과 광기로 몰아넣었던 1937년 12월 일본의 난징 침략을 다루고 있다. 중일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전투에서 중국군과 일본군, 그리고 난민들은 각자 생존을 위해 싸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중국에서 최소한 15만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난징대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로 중국내 반일감정을 자극하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중국에서 2009년 4월에 개봉되어 흥행에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 이 영화의 배경은 1937년 일본의 난징 침략이지만 감독은 전쟁에서 상실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광기로 말미암아 전쟁에서는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도 없고 승자와 패자의 구분도 없음을 지적한다. 영화초반의 치열하고 격렬한 전투장면이 지나고 나면 이야기는 전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세밀히 다룬다. 처음 병사들을 향했던 총구가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불을 뿜어댄다. 영화의 후반부는 일본군 주인공을 통해 학살의 과정에서 인간성을 상실하고 영혼이 죽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감독은 극악한 폭력이란 압도적인 물리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공포에서 온다는 점을 병사들의 살상과정을 통해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압도적인 규모의 전쟁 씬에 기대거나 편향된 관점에 빠지지 않고, 극한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마지막까지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종호)
1937년 12월 12일에 일어났던 페나이 호 - USS Panay (PR-5) 사건은 일본의 항공기들이 중국 난징 근처 양쯔강에 정박 중이던 USS Panay를 공격, 침몰시킨 사건입니다. 물론 이 공격으로 인해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상황으로까지 직접 비화되진 않습니다만, 최소한 미일관계를 크게 훼손시켜 이로부터 4년 뒤 벌어진, 일본에 의한 진주만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중일전쟁을 넓은 의미의 2차대전에 포함시킨다면, '교전중' 최초의 미군 희생자를 낸 셈이죠.
페나이 호 침몰 바로 하루 뒤인 12월 13일 華中(중국)방면군 사령관 마츠이 이와네 (松井石根)가 이끄는 일본군은 난징을 점령합니다. 그러면서 "황군이 가는 길은 오직 빛날 뿐이다."라고 선언했죠. 그와 참모들은 난징점령 직후인 1937년 말에서 이듬해 초까지 6주간에 걸쳐 벌어진 난징학살의
(마츠이 대장과 히로타 고우키(廣田弘毅) 근위내각 외무대신 그리고 무토 아키라(武藤章) 군사고문 -> 중일전쟁의 시발이 된 1937년 7월 7일 루꺼우쵸(노구교(蘆溝橋))사건에도 깊숙히 개입한 이 3명은 확실히)
주범으로 종전 뒤 처벌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심지어 독일군 옵저버들도 학살을 목격하고 일본군이 얼마나 잔인한지 큰 충격에 휩싸였다는 내용을 베를린 상부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1938년 1월 15일자 독일의 주 중국대사관의 로슨이 본국 외교부에 보낸 보고서에 난징대학살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원본은 포츠담 분관에 소장되어 있구요.)
이 중 주요한 내용중 한 부분에는 "교외의 작은 항만 샤관에는, 약 3만구의 시체가 들판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이런 시체는 유사 이래 가장 잔인한 대학살로 비롯된 것입니다. 시신을 수습하는 단체는 매일 구덩이를 파 약 500에서 600명의 시체를 묻고 있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만 일본군이 주로 참수와 총검으로 찔러 학살한 중국인 남녀노소가 최소 15만 명이 넘는다죠.
공개된 미국외교관계공문서 RG59-793.94/11631호에는 1937년 12월 14일 15:00시 베를린 시간, 미국의 주 독일대사 Dodd가 미 국무 장관 Hull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전보가 담겨있는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Today the news from the the Far East is worse than ever and I have read your and Secretary Hull's statements as to Japanese brutality. The Japanese Ambassador here boasted a day or two ago of his country's having killed 500,000 Chinese people. The facts of today and the statements that have been made show that no positive action is expected on the part of the United States and England. This simply means that the policy of Mussolini and Hitler is expected to be applied to the world and what a and result that would be.
최근, 극동으로부터의 소식들이 한층 더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일본의 만행에 관하여 당신과 국무장관 헐의 기술을 읽었습니다. 여기있는 일본 대사는 하루, 이틀 전에, 자신의 국가가 50만 명의 중국인을 죽였다고 자랑했습니다. 최근의 이런 사실과 진술은 미국과 영국측에 명확한 행동이 기대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간단히, 뭇솔리니와 히틀러의 정책이 세계에 적용된다면, 어떠한 결과가 올 것인지를 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전보의 날짜입니다. 12월 14일은 일본군이 막 난징을 함락한 다음 날이죠. 이 때, 이미 일본의 주 독일대사는 일본이 50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했다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당시 미국 외교관의 전보는 미 국무부를 거치게 되어 있었으며, 도드는 이 전보를 대통령에게 전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뜻으로, 이 전보에 언급된 50만 명 학살수는 부인할 수 없는 중대한 정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다소 과장되었을지 몰라도) 일본군은 양쯔강 지류상의 상하이를 점령후 난징으로 진격하는 도중에 수십 만 명의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이 전보문은 최소한 일본군부가 그러한 학살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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